고립된 컴퓨터를 하나로 묶다: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 WWW의 탄생 [4편]

초기 개인용 컴퓨터는 문서 작성과 계산을 돕는 유능한 기계였지만, 철저히 혼자 작동하는 고립된 상자였습니다.

다른 사람과 데이터를 나누려면 플로피 디스크를 직접 들고 걸어가서 건네주는 이른바 '스니커넷(Sneakernet)' 방식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기계 간의 물리적 거리감이 곧 정보 교환의 한계선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총 10편으로 이어지는 컴퓨터 역사 시리즈의 네 번째 편에서는 독립된 컴퓨터들이 어떻게 전 지구적 네트워크로 묶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클릭 한 번으로 정보를 넘나들게 만든 웹의 기원을 살펴봅니다.

핵전쟁의 위협 속에서 피어난 분산 통신망의 기초

단 하나의 사령부가 무너져도 살아남는 아파넷의 탄생

인터넷의 뿌리는 냉전 시절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ARPA)이 추진한 군사 연구 프로젝트 '아파넷(ARPANET)'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존 중앙 집중형 통신망은 중심 기지가 폭격을 맞으면 전체 통신이 마비되는 치명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에 미 국방부는 핵심 서버가 파괴되더라도 주변의 다른 우회 경로를 통해 통신이 계속 유지되는 분산형 네트워크 구조를 연구했습니다.

1969년, 미국 4개 대학 연구실의 메인프레임을 전화선으로 연결한 첫 통신 실험이 성공하면서 현대 인터넷의 뼈대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데이터를 작은 조각으로 쪼개 보내는 패킷 교환과 TCP/IP

네트워크의 성공적인 확장을 위해선 서로 다른 규격의 컴퓨터들이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화 규칙, 즉 프로토콜(Protocol)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빈턴 서프와 로버트 칸은 대용량 데이터를 '패킷'이라는 작은 단위로 잘게 쪼개어 보낸 뒤 목적지에서 다시 재조립하는 TCP/IP 표준 규격을 정립했습니다. 패킷 교환 방식은 특정 통신 회선이 끊어져도 다른 빈 회선을 찾아 데이터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뛰어난 안정성을 제공했습니다.

이 TCP/IP 프로토콜이 전 세계의 크고 작은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는 공용 언어가 되면서 거대한 인터-네트워크(Internet)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었습니다.

삐- 소리와 함께 열린 사이버 공간과 통신 문화

전화선을 빌려 쓰던 PC통신과 아날로그 모뎀의 추억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일반 가정에 인터넷의 맛을 보여준 주역은 구리 전화선에 연결하던 전화 모뎀이었습니다.

컴퓨터의 디지털 신호를 소리 형태의 아날로그 신호로 바꾸어 전화선으로 전송하는 모뎀은 연결할 때마다 특유의 거친 기계음을 뿜어냈습니다. 모뎀을 켜고 PC통신에 접속하는 동안에는 집 전화가 불통이 되었고, 잘못 사용했다가 막대한 전화 요금 고지서를 받아 당황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비록 파란 화면에 하얀 텍스트만 가득한 환경이었지만, 컴퓨터 너머의 낯선 사람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고 동호회 활동을 즐기는 전례 없는 디지털 소통 문화가 뿌리내렸습니다.

모든 정보를 클릭 하나로 연결한 월드와이드웹 혁명

스위스 입자물리 연구소에서 시작된 팀 버너스리의 하이퍼텍스트

많은 사람이 혼동하지만 인터넷(통신망)과 웹(Web)은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1989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연구원 팀 버너스리는 방대한 과학 연구 논문을 연구자들이 손쉽게 공유하고 추적할 수 있는 '월드와이드웹(WWW)' 시스템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문서 내의 특정 단어를 클릭하면 다른 관련 문서로 즉시 이동하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 개념을 고안하고, 이를 전송하는 HTTP 규약과 HTML 언어를 설계했습니다.

팀 버너스리는 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인 특허로 독점하지 않고 전 인류를 위해 무료로 공개하여 전 세계 웹 확산의 기폭제를 마련했습니다.

이미지를 화면에 띄운 최초의 대중 브라우저 모자이크

초기 웹 문서는 텍스트만 표시할 수 있어 일반 대중이 흥미를 느끼기에는 다소 건조한 형태였습니다.

1993년 마크 앤드리슨이 개발한 '모자이크(Mosaic)' 브라우저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한 화면에 동시에 렌더링하는 시각적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마우스 클릭만으로 전 세계 서버에 보관된 사진과 글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게 되면서 웹은 일반 대중의 일상 속으로 급속히 파고들었습니다.

이후 모자이크 개발진이 창업한 '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간의 치열한 브라우저 전쟁을 거치며 정보의 바다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화려한 멀티미디어 플랫폼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다음 5편에서는 하드웨어와 네트워크 혁명을 지나, 실리콘과 금속 덩어리에 생명을 불어넣은 '컴퓨터 언어와 소프트웨어의 진화'를 다룹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인터넷(Internet)과 월드와이드웹(WWW)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A1. 인터넷은 전 세계 컴퓨터들이 케이블과 무선망으로 물리적 연결을 이룬 거대한 도로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반면 월드와이드웹(WWW)은 그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다양한 교통수단 중 하나로, 하이퍼텍스트와 브라우저를 이용해 문서를 주고받는 정보 서비스 체계입니다. 즉 인터넷이라는 인프라 위에 웹, 이메일, 파일 전송(FTP) 같은 여러 응용 서비스가 구동되는 구조입니다.

Q2. 팀 버너스리가 월드와이드웹(WWW) 특허를 등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A2. 팀 버너스리가 기술을 독점하고 사용료를 부과했다면 웹 표준화 작업이 크게 지연되거나 다른 폐쇄적 상용 네트워크에 주도권을 내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가 CERN을 설득해 로열티 없는 완전 공개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전 세계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웹 서버와 사이트를 구축하며 유례없는 속도로 기술 혁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Q3. 초창기 모뎀 통신은 왜 인터넷 웹 서핑보다 속도가 훨씬 느렸나요?

A3. 초기 모뎀은 음성 통화 전용으로 설계된 아날로그 구리 전화선을 빌려 데이터를 변조해 전송했기 때문에 대역폭이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모뎀의 통신 속도는 14.4kbps~56kbps 수준에 불과하여 음악 파일 한 곡을 내려받는 데도 수십 분이 걸렸습니다. 이후 데이터 전용 광케이블과 초고속 광대역 인터넷망(ADSL, FTTH)이 구축되면서 대용량 멀티미디어 전송이 원활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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